Nov 11, 2011

치즈케익의 탈을 쓴 설탕범벅

물 탄 우유를 얼린 것과 눅진한 설탕가루뭉치를 번갈아 먹었더니 한숨이 나온다. 이런 놀라운 마리아주도 드문데, 맛집 안테나가 작대기 여섯 개의 꼿꼿뻣뻣함에 잠시 마비된 게 틀림없다.

한 가지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는 건 나쁘지 않다. 그러나 그 이름을 되뇌이다가 단어 자체의 덫에 빠져드는 순간 사고회로 전체가 마비되는 부작용은, 피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. 온 몸 중에서 유일하게 살이 붙을 줄 모르는 열 손가락들이 오한을 느끼고 키보드와 키스킨 사이를 갈라 파고들었다. 온갖 뒷맛이 입안을 돌아다니고 갈 곳 없는 두 다리는 책상 위에서 마름모를 그린다. 나는 이 세상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. 잘은 아니더라도, 오늘 만났던 어떤 사람의 미래처럼 상급, 아니 고급의 단어와 물질과 생활방식에 자연스러워질 수는 없더라도. 그저 자연스레 끝나기 전까지는 지금의 고른 숨을 계속해서 쉴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졌다. 엉덩이 대신 척추 말단으로 앉고, 단정하게 걷지 못하고, 비슷한 방식으로 비틀어진 마음가짐을 한데 모아놓은 게 나인데도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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